시사 평론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전말 및 이 사건이 시사하는 점

군웅할거 2021. 12. 6. 15:38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다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청했습니다. (2021년 11월 25일 방영)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보면서 함께 생각해볼 문제가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내용도 요약해서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알아보시고 이 사건이 시사하는 점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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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범곤-총기-난사-사건

 

늦었지만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의 전말

 

 - 사건 일시 : 1982년 4월 26일 밤

 - 사건 장소 :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

 

우범곤은 누구인가?

 

우범곤은 해병대 특등 사수였고 청와대 대통령 경호대 근무 경력이 있다. 사건 당시 그는 궁류면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던 경찰이었다. 

 

어찌 보면 건실해 보이는 청년이었던 우범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우범곤에게는 주사가 있었다. 술만 마시면 폭력과 욕설을 동반하여 주변에 피해를 주기 일수였다. 마을에 오게 된 계기 역시 술이었다. 이런 술버릇이 화근이 되어 이 마을로 전출을 오게 된 것이다. 

 

사건 4개월 전 마을에 오게 된 우범곤은 마을에 있는 한 여인과 교제를 시작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그이지만, 집안 어른의 반대로 결국 결혼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그 여인과 동거를 시작했다. 평소 술버릇 문제로 마을 사람들과 마찰이 있던 터에 이런 일까지 겹쳐 마을 사람들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사건의 시작

 

사건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했다. 어느 날 우범곤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가슴에 앉았다. 그와 동거하던 여인은 파리를 잡기 위해 우범곤의 가슴을 쳤고, 이 때문에 짜증 난 그는 그녀에게 불 같이 화를 내어 큰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 싸움 때문에 여인의 가족들이 그가 근무하던 파출소까지 찾아와 그에게 따져 물으며 그와 대거리를 했고, 그의 내면에는 더 큰 분노가 자리 잡았다. 

 

사건 당일 그는 또 술을 먹었다. 술을 먹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던 우범곤은 무기고에 있던 소총 두 자루와 총알들, 그리고 수류탄 8개를 챙겨 파출소를 나섰다. 술에 취한 중에도 철저히 계획적으로 보인 부분은 그가 가장 먼저 습격한 곳에서 나타난다. 당시에는 외부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우체국을 거쳐야 했는데, 그는 처음 길을 나서면서 우체국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궁류 우체국 안에 있던 직원들을 전부 사살한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있는 사람들은 소총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수류탄으로.. 그가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되었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그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비극으로 끝난 그날의 사건

 

옆 마을로 이동하던 우범곤은 옆 마을 장례식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시끌벅적 상을 치르고 있던 그곳에서 다시 한번 술상을 받아 마신 그는 갑자기 난동을 피며 장례식장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곳을 벗어나 또다시 옆 마을로 이동하던 그는 마을의 한 청년에게 물어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을 알게 됐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그를 잡으러 왔다. 이때 잡혔다면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겠지만, 그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경찰이 들이닥치는 그 순간 그는 방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렸다. '쾅'하는 폭발과 함께 우범곤과 마을 사람들 모두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한밤중에 벌어진 한 청년의 광란의 살인극은 마무리되었다. 

 

당시에는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이라 정확한 사망과 부상자 수가 제대로 집계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 우범곤은 8시간 동안 92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고 보도됐고, 이는 한 사람이 일으킨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상자로 기록되었다.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이 시사하는 점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마음도 착잡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범곤은 이 사건 이전에도 작든 크든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무려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 그를 조직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위에 서술했던 것처럼 작은 마을로 전출시켰습니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를 그저 우리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데 급급한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그저 문제가 내 앞에서 사라지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나만 아니면 돼'라고 스스로 위로하면 될까요? '이번에는 너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범곤을 오지의 마을로 보내면서 그가 속했던 공동체는 문제를 해결했다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출된 그곳에서 정말 끔찍한, 희대의 사건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범곤만의 책임일까요? 우리가 함께 지어야 할 책임을 미뤘기 때문에 생긴 건 아닐까요?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겨져 함께 나눕니다.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이 여전히 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저런 큰 사건은 금방 잊히고,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고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범곤" 같은 문제를 가까이 두고 그와 더불어 살 생각, 책임질 생각은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런 방법만이 결국 '나에게 올 큰 불행'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전말과 이 사건이 시사하는 점 같이 나눴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도가 그때와 여전하다면,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그날을 꿈꾸며 계속 글을 써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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