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 공부하게 된 계기)

군웅할거 2023. 3. 23. 10:10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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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다. 이 정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점은 '성차별주의'이다. 성차별주의는 어느 한 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여자든 남자든 태어날 때부터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주입받아 사회화된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나는 이 정의를 다른 말로 "정상성"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사회는 "나"와 상의하지 않고 정상의 기준을 세웠다. 난 그 기준을 세우는데 의견을 나누거나 동의한 적 없지만, 어려서부터 그 기준이 정답인 양 살 수밖에 없었다. 왜?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 기준에 적합한 사람을 "정상"이라 불렀고, 벗어난 사람을 "비정상"이라 지칭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난 이 정상성을 "정명론"이란 이름을 붙여 가며 따랐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군군신신부부자자] 되는 것입니다." (논어) 

 

얼마나 멋있는가?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학생답게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시간이 지날수록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인생을 예측할 수 없고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으므로.

 

일단 가장 가깝게는 학생답게 살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다.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혹은 본인의 성향 때문에..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불가항력적인 것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학생답게'를 강제한다는 것은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가 들어 사회에 나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직원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장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의 '직원다움'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처럼 '~답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정상성'의 끝판왕이 있다. 바로 "남자 / 여자답게" 즉,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회의 기준이었다. 남자 / 여자라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며.. 이 부분이 숨 막히게 내 삶을 조여왔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화되었기에 익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누구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에겐 이 부분이 그랬다. 

 

우리 사회의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가부장제이다. 남자는 그 제도의 어느 정도 수혜자로 볼 수 있다.  그 수혜를 부정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 수혜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다. 남자로서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리는 대신 그 제도를 지키기 위해 나 역시 지배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 요구에 부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런 혼란을 겪을 때 만났던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즘이 뭔지, 페미니즘 운동이 무엇인지 알아갈 때마다 내 안에 있던 족쇄가 하나씩 풀려가는 느낌이었고 내면 깊은 자유함과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여전히 이 사회가 세운 편견의 산과 통곡의 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어떻게 등반해야 할지 배우고 있달까?

 

페미니즘 역시 전체주의적인 색채를 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며 배워가고 있다. 많이 사람들이 그런 생각 때문에 주저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와 보기를 권유한다. 페미니즘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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